1. 관람기를 시작하기 전에...
지금부터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공연 관람기이지만, 일단은 공연 발표 지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때는 2011년 7월 4일.
<나츠니지>이후 약 1년이 지나 오매불망 쥰님의 새 드라마 소식을 기다리던 무더운 여름이었다. 회사에서 근무 시간 중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종종 쥰님의 이름으로 의미 없는 ‘검색질’을 하곤 하는데 그 때 우연히 본 블로그에 신주쿠 골든가이에서 촬영을 하는 쥰님을 봤다는 목격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코이데 케이스케와.
당시만 해도 부타이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여서 당연히 드라나마 영화라고 생각한 나는 지인들과 아무래도 조만간 일이 생길 것 같다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블로그에 달린 덧글에 의하면 쥰님 부타이가 예정돼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이 기세의 아라시가 관객이나 티켓 소동을 어찌 감당하려고 부타이.. 하면서 괘념치 않았다.
그러나 내년은커녕 약 2주 후인 7월 21일. 쥰님의 부타이 소식이 공식 발표됐다.
그것도 전화로만 티켓 접수를 받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 함께.
아마도 많은 쥰 팬들이 당시의 쇼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니나가와 유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연출가고, 원작자인 테라야마 슈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연극, 영화, 시 등 다양한 분야에 꽤 신선한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들의 작품을 함께한다는 기쁨보다는 여러가지 걱정이 더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다.
나 역시 같은 날 있었던 하라다 요시오상 장례식에 참석한 쥰님 뉴스가 없었다면 한동안 좌절에 빠져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복을 입은 쥰님이 불경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 부타이는 참석해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솟아올랐달까. 그리고 그날 나는 <아아, 황야> 연극기간에 국내에서 상영되는니나가와 상의 또 다른 연극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도 예매를 했다.(결국 이 연극의 예매로 나의 <아아, 황야> 관람일도 그 전주로 정해지지 않았나 싶다)
아마도 <아아, 황야> 부타이를 보고 온 후에 이 연극을 보기로 한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신지가 더욱 아련해졌으니까...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에서 사왔던 테라야마 슈지 작품 포스터)
7월 29일부터는 아라시 콘서트 때문에 삿포로와 아오모리엘 다녀왔다.
아오모리에서는 현립미술관에서 뜻하지 않게 <아아, 황야>의 원작자 테라야마 슈지의 작품전시를 관람하게 됐는데 그게 참 묘하게 작용을 했다.
사실 지저분한 신주쿠골목, 게다가 복서 등등의 간헐적인 정보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던 시점에서 그의 작품포스터와 실험영화 장면들은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비록 6, 70년대의 낡은 감성이기는 하지만 아웃사이더의 날감성은 꽤나 신선했고 꽤나 자극적이었다. 그의 일그러지고 비틀렸으며 게다가 과감하게 성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전시작을 둘러보면서 마음 속엔 작은 기대가 피어났다.
배우 마츠모토 쥰으로 먼저 팬 질을 시작해서 일까?
늘 그가 당당히 걸어가는 아이돌의 길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한 켠으로는 꽤 다크하거나 꽤 아슬아슬하거나 한 다양한 음지의 역할도 보고 싶다는
욕망이 깊은 마음 속엔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테라야마 슈지의 작품이라면 그 꿈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반항적이고 밑바닥 인생에 여자와 담배와 술을 즐기는 마츠모토 쥰을... 보는 것이...”
그리고 28세 생일을 지난 8월 31일 불량하고 와일드한 포스가 팍팍 풍기는 부타이 포스터가 발표됐다.
날카로운 눈빛과 손을 살짝 가져간 입가에 감도는 묘한 분위기가 어찌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리고 9월 7일에 있었던 제작발표회까지 거치며 애초에 가졌던 부타이에 대한 불안감이나 불만감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증폭되어 있었다.
2. 아오야마로 향하며...
부타이를 관람하기 전 내가 알고 간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분량의 2/3가 노출장면이고, 그 가운데 1/3이 베드씬이다.
2) 바리깡이 마지막에 죽으며, 마지막 둘의 대결은 슬로우 모션으로 연기한다
3) 쥰님의 통로석 이동이 있다. 오른편보다는 왼편이 많다.
4) 원작을 1/2가량 읽었는데 바리깡의 경우 신지에 대한 연민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번민이 더 크고, 요시코의 분량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다는 것. 그리고 사이드 인물들이 많은데(성 불구자인 슈퍼주인이라던가, 와세다 자살연구회) 이런 부분들이 과연 연극에는 어떻게 담길지... 우리는 신지의 어느 부분에 이끌려 공감하면 되는 것인지...
5) 쿨하게 반응하던 밍님의 극찬이 도를 넘었다. 최고의 역할이라는데 과연 어떨까...
우선 내가 관람을 한 공연은 11월 18일 오전 공연(이날은 공연이 오전 밖에 없었으며 많은 사쿠쥰 팬들이 쇼상이 나조디 연재에서 이야기한 후지 스튜디오에 쥰님이 온 날로 추정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11월 19일 오전과 오후 공연으로 좌석은 다음과 같다.
3. 1막
일단 니나가와상의 연극은 상영시간보다 조금 일찍 입장하는 편이 좋다.
엊그제 본 한국에서 한 공연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의 경우는 좀 달랐지만 예전 <백야의 여기사> 때도 그렇고
이번 <아아, 황야> 역시 대부분의 배우들이 공연 시간 전 무대 위에서 몸을 푼다. 스트레칭을 하는가하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 니나가와상을 닮은 배우는 객석을 돌아다니며 아는 관객(아무래도 같은 업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몸을 푸는 배우 곁으로 가 말을 걸더니 화를 내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역시나 무대 위의 배우들 중에 쥰님이나 코이데, 카츠무라 상은 없지만 여 주인공인 쿠로키 하루는
다른 배우들과 섞여 몸을 풀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안내방송이 흐르고 잠시 후....
어느새 자유분방하게 흩어졌던 배우들이 열을 만들고 음악에 맞춰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리듬감이 느껴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배우들. 마치 뮤지컬의 시작이라도 되듯 간단하게 시작되던 안부는
거대한 대형을 만들었다 흐트러지기를 반복하고 갑자기 흘러나오는 탱고 선율에 맞춰 남녀배우들이 짝을 지어 탱고를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운동복 차림의 남자들이 줄넘기를 가지고 등장해 갑자기 맹렬하게 줄넘기를 하기 시작하고
이어 등장한 여자들이 남자 옆에 서서 탭댄스로 숫자를 세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링이 울리면 남자들은 허공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힘차게 뻗는다.
이 때 테라야마 슈야의 문장을 다 같이 외치는데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일어가 짧은 나로서는 밀음을 다시 들어도 무리!
이 짧은 오프닝을 보면서 극의 전반적인 흐름이 모두 담겼다고 나중에 생각을 하게 됐는데
탱고는 섹스이고, 권투는 결국 세상(자신)과의 싸움이며, 결국 황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맛보기 마련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허무한 싸움에서도 고고하게 빛나는 한 사람이 바로 신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극을 다 보고 나온 후 미투에 남긴 내 감상은 딱 하나였다. 쏘 퍼킹 스페셜!
이어 원작에도 나오는 무라타 히데오의 <柔道一代>가 흐르며 배우들은 모두 퇴장.
무대에는 신주쿠 거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내려온다. 그리고 무대 맨 뒤에서는 포크레인이 나오면서
그 앞에 탄 츠키가와 유키(月川悠貴_아마도 이분 블로그 즐겨찾기 해놓으신 쥰팬들 꽤 될 듯)가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고
1절이 끝난 뒤에는 그 음악에 맞춰 등장인물들이 등장. 코이데(바리깡)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사라지고,
쥰님(신지)은 무려 오른편에서 트럭(용달차?) 위에 등장하시는데.. 우수에 찬 날카로운 눈빛도 멋지지만
이후 차 위에 쪼그리고 앉는 모습도 완전 귀엽다는... (사실 이쪽을 한방 포즈라고 더 좋아했던 기억이..ㅋ)
(파파 사진 중 이 모습이 바로 신지의 첫 등장인 트럭 위 장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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